하루를 일생처럼-다석귀천 30주기 기념 추모문집

2011.03.16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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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석 류영모 탄일 121주기, 귀천 30주기 기념 추모 문집
다석의 유일한 단편소설 [귀남과 수남](1917년) 발견 후 첫 수록 공개!

우리말과 우리글로 철학한, 우리나라가 낳은 위대한 사상가, 다석(多夕) 류영모(1890~1981). 함석헌, 김교신, 류달영, 서영훈 같은 이들의 정신적인 스승으로 잘 알려진 다석은,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우리나라에서 열린 세계철학대회(2008년)에서 함석헌과 함께 한국의 대표적인 사상가로 소개되면서 세계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이 책은 다석의 탄일 121주년을 기념하고, 귀천 30주기를 추모하기 위해 그의 제자인 함석헌, 박영호를 비롯해 다석의 손녀, 다석사상을 연구하는 대학 교수 등 15명의 글과, 다석 귀천 1주기에 직제자들이 구기동 150번지 다석 선생 자택에 모여 나눈 정담(다석 류영모 스승님 추모담)을 엮어 만든 추모 문집이다. 책임 집필을 맡은 정양모 다석학회 회장은 추모 문집을 내며 말했다. "다석 선생은 원체 숨어 사신 은수자시라 우리 겨레에게조차 잘 알려지지 않은 실정이지만, 장차 세계 사상계에 우뚝 솟으리라고 감히 예언한다."
'일일일생주의(一日一生主義)': 하루를 일생처럼
"나의 삶으로 산다는 궁극의 의미는 어디에 있는가. 가로대 오늘살이에 있다.… 하루를 무심히 지내면 백 년, 천 년을 살아도 시간을 다 잃어버린다.… 하루하루를 지성껏 살면 무상한 인생도 비상한 생명이 된다. 하루하루를 덧없이 내버리면 인생은 허무밖에 아무것도 아니다.… 내일을 찾으면 안 된다. 내일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손님이다. 언제나 오늘 오늘, 오늘 하루를 사는 것이다. 인생은 어제에 있는 것도 아니고 내일에 있는 것도 아니고 오늘, 오늘에 있다."
이는 1918년 6월 16일자 [청춘]지 14호에 실린 다석의 글이다. 이에 대해 다석의 마지막 제자인 박영호는 "다석은 이렇듯 이미 28살에, 우리가 말하는 일생이라는 것도 70년이나 80년, 90년이 아니라 하루인 것을 깨달았다. 오늘을 잃으면 일생을 잃게 되고 오늘을 잡으면 일생을 얻게 된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그래서 일일일생주의를 갖게 된 것"이라고 말한다. 다석은 이러한 철학적 사고를 바탕으로 일일일식(一日一食)을 행하고, 말년에는 죽어서나 눕게 되는 칠성판 위에서 먹고 자며 생활을 했다. '밤에 잠드는 것은 죽는 것이요, 아침에 깨어나는 것은 다시 태어나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말이다.
[다석일지] 1955년 4월 26일자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하루를 산다는 말은 통째로 산단 말이요, 하늘을 산다는 말이다." 이 책의 제목인 "하루를 일생처럼"은 바로 이러한 다석의 '일일일생주의', 곧 하루살이의 철학에서 가져온 말로, 다석의 삶과 사상을 아주 적절히 담고 있는 말이라 하겠다.

다석과 다석사상을 따르는 이들을 한자리에서 만나다!
이 책에는 모두 15명의 글이 실려 있다. 먼저, [뜻으로 본 한국 역사]의 저자이자 사회운동가이고 종교사상가이자 교육자인 함석헌, 무교회주의자들의 신앙 동인지인 [성서조선]의 주필 김교신, [상록수]의 여주인공 최용신과 함께 농촌계몽운동을 했던 전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류달영 등 이미 작고한 이들이 생전에 풀어놓았던 다석에 관한 감명 깊은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함석헌은 다석의 일일일식에 얽힌 에피소드와, (계우회 사건으로 옥고를 치를 당시) 자신 때문에 다석이 오래전에 끊었던 '소리 내서 하는 기도'를 다시 드리게 되었다는 이야기 등을 들려준다. 이와 더불어 김교신과 류달영의 글을 통해 우리는 다석의 인간적인 면뿐만 아니라 다석이 자신의 철학(사상)을 일상생활에서 얼마나 철저하게 실천했는지를 엿볼 수 있다. "자기를 위하여는 항상 궁핍하되 남을 위하여는 언제든지 원조할 자금이 대기 상태에 있음이 그의 생활의 특색이다."(김교신) "참의 한 길을 걸어가던 두 인물의 사귐, 물과 불과 같은 사이가 되기 쉬운 정통 신앙과 비정통 신앙의 두 인물이 서로 믿고 높이면서 험난했던 역사의 길을 정정당당하게 살고 간 것을 생각할 때 우리는 어느 나라에서도 그 예를 찾아보기가 어려울 것이다."(류달영)
그리고 다석의 마지막 제자인 박영호 다석학회 고문, 다석학회를 이끌고 있는 정양모 신부, 박재순 씨 연구소 소장, 임락경 시골교회 목사 등 다석을 직간접으로 따르는 이들의 글들도 실려 있다. 정양모 신부는 다석이 지은 단편소설인 [귀남과 수남]에 대한 해설과 함께 '다석일지'에 실린 예수 시편 40수를 풀어서 들려주며, 박영호 고문은 다른 이의 신앙을 존중하는 종교 다원주의의 선구자로서의 다석을 소개하고 있다. 박재순 소장은 다석의 철학이 "동서문명의 통합을 추구했고, 몸과 맘과 얼의 통합과 일치를 추구했고, 물질적 탐욕과 물신 숭배에서 벗어나 빈탕한데의 자유를 누리면서 맘은 맘대로 하고 몸과 물질은 몸대로 물질대로 실현하고 완성하는 길을 추구"했다면서, 다석사상을 낡은 문명을 극복하고 새 문명을 이끌 사상이라고 강조한다. 임락경 목사는 "(다석) 선생님을 살아생전 찾아뵙고 가르침을 받기 위해 찾아다녔던 사람 중에 나보다 더 어린 사람을 못 보았다"며 "나 또한 노인의 반열에 들었으니 마지막 증언이 되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에 다석을 추억하는 글을 남겼다.
이와 함께 다석과 다석사상을 학문적으로 접근하는 글들도 있다. 윤정현 성공회대 교수는 다석이 노장사상, 불교사상, 유교사상의 자아 이해를 바탕으로 그리스도교의 인간 이해를 해석해냈다며, 이는 곧 동양적 그리스도교 또는 한국적 그리스도교의 가능성을 보여준 해석이라는 입장에서 '다석의 자아 이해'를 고찰한다. 이정배 감신대 교수는 역사적 예수와 그리스도의 관계를 다석 고유한 시각으로 정리하여 기독교(인)의 재주체화(토착화)를 모색하며, 국문학자인 박규홍 경일대 교수는 국문학사상 가장 많은 시조를 남긴 다석과, 그의 시조가 국문학사상에서 올바르게 자리매김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다석의 시조'를 연구 분석한다. 그리고 최인식 서울신학대 교수는 신학자인 자신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던 다석의 성경해석과 그만의 고유한 신학사상을 그의 입장에서 이해하기 위해 진행하고 있는 '다석과의 대화'에 대한 이야기를 에세이 형식으로 들려준다.
또한 다석 할아버지와 함께 생활하면서 다석을 가장 가까이서 보고 자란 다석의 둘째 손녀 유희원 씨의 "우리 할아버지를 회상하며"에서는 지금까지 그 어디에서도 들어볼 수 없었던 '할아버지 다석'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그밖에도 김성언(아랍어 강사), 김경희, 김병규(이상 다석학회 회원) 등이 다석과 다석사상에 대한 소회나 추모글, 그리고 다석 귀천 1주기 때 다석의 집에서 나눈 스승에 대한 추모담(참석자: 김흥호, 함석헌, 서영훈, 박영호, 전병호, 이상호, 조경묵, 이성범, 고봉수, 서완근, 염낙준, 홍일중) 등이 실려 있다.
왜 시간이 흐를수록 다석과 다석사상이 사람들에게 널리 퍼지고, 우리나라를 벗어나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지 알고 싶은 분들에게 이 책은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처음 공개되는 다석의 유일한 단편소설 [귀남과 수남]
[하루를 일생처럼]에는 아주 귀한 소설 한 편이 담겨 있다. 그동안 유족을 통해 말로만 전해지던 다석의 유일한 단편소설 [귀남과 수남]이 그것이다. 이 단편은 고려대 국문과 조경덕이 논문 자료를 수집하다가 <매일신보> 1917년 1월 23일자에 실린 전문을 우연히 찾아냈는데, 이번 추모 문집을 통해 세상에 처음 소개하는 것이다(소설 원문은 한글맞춤법이 정립되기 전의 글이라, 다석학회 회원들이 원문과 옛 표현을 살리면서 읽기 쉽게 다듬은 것을 실었다).
소설의 내용은 이렇다. 가난한 부부가 성북동 북악산 기슭에서 아들(귀남)을 키우며 근근이 살았는데, 귀남이 다섯 살 되던 해에 갑자기 죽는다. 그리고 귀남이 죽은 다음 달에 둘째 아들(수남)을 얻는데, 수남이마저 일곱 살 때 급사하고 만다. 이러한 참척의 고통을 연이어 겪으면서 부부는 신앙에 대해 회의를 느끼고, 심지어 저주에 가까운 증오까지 하게 된다. 하지만 수남의 죽음을 계기로 부부가 마태오복음의 주기도문을 보고 크게 깨우치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얼핏 톨스토이의 작품 [사랑이 있는 곳에 신이 있다]의 내용과도 많이 닮은 느낌이 있다. 아무튼 다석의 이 단편소설에 대해 정양모 신부는 수남이의 죽음을 통해 신앙에 회의를 느끼는 부분까지는 자연스럽지만 수남의 죽음으로 부부가 갑자기 신앙을 깨우치는 결말은 "어딘가 뜻밖이고 어색하다"고 평한다. "돈오라는 말이 있기는 하지만 저 부부가 아들을 잃은 극한 상황에서 그리고 쉽게 기복신앙을 극복했다는 소설 끝맺음은 어딘가 작위적이라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소설은 단순히 허구가 아니다. 다석이 직접 자신의 집안에서 보고 겪은 사실을 소설로 풀어낸 것이다. 당시 이 나라의 '3천재', '5천재' 소리를 들으며, 최남선, 이광수와 함께 우리나라 3대 문인의 한 사람으로 평가받던 다석이 소설 형식을 빌려 쓴 신앙간증이자, 신앙(종교)소설인 것이다. 실제로 다석의 형제는 모두 13명이었으나 20살을 넘겨 산 이는 다석과 아우 영철뿐이었다. 특히 다석이 21살 때 19살이던 아우 영묵이 죽는데, 정양모 신부는 "아우 영묵의 죽음을 목격하고 그 화두를 푼 것이 [귀남과 수남]으로 귀결된 것"이라고 설명한다(다석은 26살에 이 소설을 썼다).
다석 류영모 탄일 121주기, 귀천 30주기 기념 추모 문집
다석의 유일한 단편소설 [귀남과 수남](1917년) 발견 후 첫 수록 공개!

우리말과 우리글로 철학한, 우리나라가 낳은 위대한 사상가, 다석(多夕) 류영모(1890~1981). 함석헌, 김교신, 류달영, 서영훈 같은 이들의 정신적인 스승으로 잘 알려진 다석은,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우리나라에서 열린 세계철학대회(2008년)에서 함석헌과 함께 한국의 대표적인 사상가로 소개되면서 세계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이 책은 다석의 탄일 121주년을 기념하고, 귀천 30주기를 추모하기 위해 그의 제자인 함석헌, 박영호를 비롯해 다석의 손녀, 다석사상을 연구하는 대학 교수 등 15명의 글과, 다석 귀천 1주기에 직제자들이 구기동 150번지 다석 선생 자택에 모여 나눈 정담(다석 류영모 스승님 추모담)을 엮어 만든 추모 문집이다. 책임 집필을 맡은 정양모 다석학회 회장은 추모 문집을 내며 말했다. "다석 선생은 원체 숨어 사신 은수자시라 우리 겨레에게조차 잘 알려지지 않은 실정이지만, 장차 세계 사상계에 우뚝 솟으리라고 감히 예언한다."
'일일일생주의(一日一生主義)': 하루를 일생처럼
"나의 삶으로 산다는 궁극의 의미는 어디에 있는가. 가로대 오늘살이에 있다.… 하루를 무심히 지내면 백 년, 천 년을 살아도 시간을 다 잃어버린다.… 하루하루를 지성껏 살면 무상한 인생도 비상한 생명이 된다. 하루하루를 덧없이 내버리면 인생은 허무밖에 아무것도 아니다.… 내일을 찾으면 안 된다. 내일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손님이다. 언제나 오늘 오늘, 오늘 하루를 사는 것이다. 인생은 어제에 있는 것도 아니고 내일에 있는 것도 아니고 오늘, 오늘에 있다."
이는 1918년 6월 16일자 [청춘]지 14호에 실린 다석의 글이다. 이에 대해 다석의 마지막 제자인 박영호는 "다석은 이렇듯 이미 28살에, 우리가 말하는 일생이라는 것도 70년이나 80년, 90년이 아니라 하루인 것을 깨달았다. 오늘을 잃으면 일생을 잃게 되고 오늘을 잡으면 일생을 얻게 된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그래서 일일일생주의를 갖게 된 것"이라고 말한다. 다석은 이러한 철학적 사고를 바탕으로 일일일식(一日一食)을 행하고, 말년에는 죽어서나 눕게 되는 칠성판 위에서 먹고 자며 생활을 했다. '밤에 잠드는 것은 죽는 것이요, 아침에 깨어나는 것은 다시 태어나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말이다.
[다석일지] 1955년 4월 26일자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하루를 산다는 말은 통째로 산단 말이요, 하늘을 산다는 말이다." 이 책의 제목인 "하루를 일생처럼"은 바로 이러한 다석의 '일일일생주의', 곧 하루살이의 철학에서 가져온 말로, 다석의 삶과 사상을 아주 적절히 담고 있는 말이라 하겠다.

다석과 다석사상을 따르는 이들을 한자리에서 만나다!
이 책에는 모두 15명의 글이 실려 있다. 먼저, [뜻으로 본 한국 역사]의 저자이자 사회운동가이고 종교사상가이자 교육자인 함석헌, 무교회주의자들의 신앙 동인지인 [성서조선]의 주필 김교신, [상록수]의 여주인공 최용신과 함께 농촌계몽운동을 했던 전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류달영 등 이미 작고한 이들이 생전에 풀어놓았던 다석에 관한 감명 깊은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함석헌은 다석의 일일일식에 얽힌 에피소드와, (계우회 사건으로 옥고를 치를 당시) 자신 때문에 다석이 오래전에 끊었던 '소리 내서 하는 기도'를 다시 드리게 되었다는 이야기 등을 들려준다. 이와 더불어 김교신과 류달영의 글을 통해 우리는 다석의 인간적인 면뿐만 아니라 다석이 자신의 철학(사상)을 일상생활에서 얼마나 철저하게 실천했는지를 엿볼 수 있다. "자기를 위하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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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양모 [저]

1935년 경북 상주에서 태어나, 성신대학(지금의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했다. 1960년부터 1970년까지 프랑스, 독일, 이스라엘에 유학을 다녀왔다. 한국으로 돌아온 뒤 1970년부터 2002년까지 광주 가톨릭대학교, 서강대학교, 성공회대학교 등에서 교수를 지냈고, 2005년부터는 다석학회 회장을 맡아 다석사상을 널리 알리는 데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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